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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니치 인기 향수 브랜드: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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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대신 향수를 뿌리는 귀족문화

향수는 보이지 않는 패션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이는 향수에 대한 역사에서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는데요. 향수는 향기를 입는다는 개념보다 먼저, 신에게 바친다는 의례에서 시작됐습니다. 연기를 통해 신과 소통한다는 의미의 라틴어 퍼퓸(per fumum)이 그 어원입니다. 라틴어 per fumum은 에서 연기를 통해서 라는 뜻으로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인도 등 문명 초기부터 향은 종교 의식, 제례, 장례의 필수 요소였습니다. 향나무, 몰약, 유향 등을 태우는 행위는 신에게 정결함을 바치는 행위였고,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중세 유럽 시대에는 긴 흑사병의 시기를 겪으며, 냄새에 대해 강한 공포심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질병이 악취를 통해 전파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향을 몸과 주변에 뿌려 악취를 가리려 했다고 합니다. 이후 좀 다르게 향수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루이 14세 시대, 파리는 하수도 정비가 미비했고 목욕 문화가 쇠퇴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향수로 악취를 덮는 방법을 택했고, 이때부터 향수는 상류층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향수는 목욕 대신 향기를 선택한 당시의 방법이었다는 점입니다. 
 
13세기~18세기 사이를 접어들면서, 향신료 무역과 함께 향료가 귀한 수입품으로 자리잡습니다. 인도,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무역길은 향신료의 길이자 향기의 항해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과정에서 유럽은 중동과 인도에서 정제 기술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인 향수 제조법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14세기 헝가리 왕비가 사용한 ‘헝가리 워터’는 유럽 최초의 알코올 기반 향수로 알려져 있으며, 17세기 프랑스 그라스(Grasse) 지역은 가죽 가공 도시였는데, 가죽공장에서 퍼지는 악취를 향으로 덮기 위해 조향 산업이 생겨났고, 오늘날까지 향수의 메카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라스 지역은 천혜의 기후 덕분에 장미, 자스민, 라벤더 같은 고급 향로 식물이 잘 자라는 조건까지 갖추고 있어서, 샤넬, 디올, 겔랑 등 유명 향수 브랜드의 원료 공급지이자, 조향사들의 수련지로도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그라스(Grasse) 향수 박물관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

향수는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뇌를 자극하는 강력한 감각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후각은 뇌의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편도체와 연결돼 있어, 특정 향기를 맡았을 때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시골집 아궁이에서 밥을 짓기 위해 장작이 타는 향을 맡으면, 그 시절 감정까지 떠오르는 그런 자국과도 같은 것입니다.
 
최근 들어 향수 시장에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니치 향수(niche fragrance)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대량생산되는 상업 향수가 아닌, 각자의 취향에 맞는 좀 더 특별한 향수를 찾는 시장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니치 향수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독창적인 향기는 단순한 향기 이상의 기억 자극 장치로 작용하며, 소비자는 향수를 통해 감정을 입고 기억을 호출합니다. 그래서 향수는 뇌과학적으로도 나를 표현하는 가장 감각적인 매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유명했던 오버클래스ID 광고문구,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는 의미는 향기가 바로 기억을 만들어내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착안한 카피일 것 같기도 합니다.


 
 

출처: 유퀴즈, 정미순 조향사편

 
 
 
 
 

인기 있는 니치 향수(niche fragrance) 브랜드

 
 

 
 
 

르 라보(Le Labo): 향기를 빚는 공방

 
르 라보는 에두아르 로쉬(Edouard Roschi)와 파브리스 페노(Fabrice Penot)가 2006년 뉴욕 소호에서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향수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향사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예술이라는 철학 아래, 매장에서 즉석 조향하는 방식과 구매자의 이름과 제조일자가 라벨에 새겨지는 퍼스널라이징 시스템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대표작 <Santal 33>는 원래 캔들로 출시되었으나, 고객의 요청으로 향수로 재탄생했는데요. 샌달우드, 시더우드, 가죽, 카르다몸, 아이리스 등 다양한 노트가 얽히며 도시적인 감성과 야성적인 자연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젠더리스 향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이 제품은 뉴요커의 냄새라 불리며 셀럽과 패션 피플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nother 13>은 어나더 매거진과의 협업으로 태어난 향수로, 저음 베이스를 만들어준다는 암브록산을 활용해서 메탈릭하고 투명한 잔향이 특징입니다. 익명성과 중독성, 그리고 모호함 속에서 미묘하게 퍼지는 이 향은 “존재감 있는 무존재”라는 르 라보 특유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향수라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바이레도(Byredo): 보이는 향기

 
바이레도는 2006년 스톡홀름에서 설립된 스칸디나비아 감성의 니치 브랜드입니다. 창립자 벤 고햄(Ben Gorham)은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조향사 훈련을 정식으로 받지 않았음에도 순수한 직관과 미학적 감각을 바탕으로 감성적인 향수들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Gypsy Water>는 바이레도의 대표 향수로, 유랑하는 집시의 자유로운 삶과 숲속의 신비로운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베르가못과 주니퍼 베리, 인센스(유향), 앰버가 어우러지며 따뜻하고 투명한 잔향을 남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집시라는 이방인의 로망을 향으로 풀어낸 이 제품은 바이레도의 철학적 감수성을 잘 보여주는 향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Mojave Ghost>는 미국 모하비 사막의 희귀 식물인 Ghost Flower에서 모티브를 따온 향입니다. 살구, 바이올렛, 샌달우드가 어우러져 건조한 대지와 신비한 생명력의 충돌을 부드럽게 표현하였다고 하는데요. 정적이면서도 강인한 존재감을 향으로 풀어내었습니다. 이외에도 <Blanche>, <Bal d'Afrique> 등은 백색의 순수함과 아프리카 대륙의 생동감을 각각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 제품으로, 바이레도는  감성과 이미지, 그리고 추상의 경계에서 향을 풀어내어가고 있는 브랜드라고 하겠습니다.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 조향사의 작품집

 
프레데릭 말은 향수 명가 로샤(Rochas) 가문 출신으로, 조향사들과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2000년 프랑스에서 에디션 드 퍼퓸(Edition de Parfums)이라는 브랜드를 설립했습니다. 조향사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며, 조향사가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큐레이터적 역할로 브랜드와 니치 향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작 <Portrait of a Lady>는 도미니크 로피옹(Dominique Ropion)이 조향한 작품으로, 다마스크 로즈, 파출리, 인센스, 벤조인 등 강렬한 노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서, 로맨틱함과 강인함, 여성성과 중성성이 교차하는 특징으로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듯한 서사를 가진 제품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Musc Ravageur>는 모리스 루셀(Maurice Roucel)이 조향한 향수로, 머스크, 바닐라, 클로브, 시나몬이 결합되어 대담하면서도 관능적인 인상을 줍니다. 이름 그대로 야성적인 머스크의 진수를 보여주며, 향수 매니아들 사이에서 컬트적 인기를 얻다고 합니다. 

 
 


 
 

 
 
 

디에스 앤 더가(D.S. & Durga): 스토리를 담는 향수

 
디에스 앤 더가(D.S. & Durga)는 2009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탄생한 브랜드로, 음악가 데이비드 세스 몰츠(David Seth Moltz)와 건축가 쿠르쇼 더가(Kavi Durga) 부부가 함께 설립했습니다. 이 브랜드는 각각의 향에 음악, 영화, 도시, 역사 등 구체적인 스토리를 덧입혀, 향을 하나의 감각적 단편소설처럼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Burning Barbershop>은 1891년 뉴욕의 실제 이발소 화재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향으로, 라벤더, 민트, 바닐라, 라임 등 전통적인 이발소 향취를 불타오르는 듯한 스모키한 잔향으로 해석했습니다. 고전과 파괴, 추억과 충격의 공존을 향에 담아낸 제품이라고 하겠습니다. 
 
<Cowboy Grass>는 미국 서부의 사막 풍경, 건초, 들꽃, 먼지 날리는 대지를 걷는 외로운 카우보이의 이미지에서 출발합니다. 베티버, 타임, 세이지 등의 허브 계열이 중심을 이루며, 야생성과 초현실성이 공존하는 특이한 텍스처를 지녔다고 알려져 있네요.

 
 
 


 
 

 
 
 

오르토 파리지(Orto Parisi): 본능적 향기의 도발

 
알레산드로 구알티에리(Alessandro Gualtieri)는 향수계의 이단아로 알려져 있는데요., 니치 향수 브랜드인 나소마토(Nasomatto) 떠난 후 2014년 이탈리아에서 오르토 파리지(Orto Parisi)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생체 냄새, 육체성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향수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 실험적 브랜드를 추구하는데요. 
 
<Terroni>는 불의 토양이라는 뜻으로, 남부 이탈리아의 용암 지대에서 자란 사람들의 강인함과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연기, 소나무, 토양, 불탄 나무 향이 조화를 이루며, 깊고 어두운 흙의 숨결을 담아낸 듯한 인상을 주는 개성을 담은 향이라고 하겠습니다.
 
<Megamare>는 바다의 심연을 표현한 향수로, 소금기 가득한 해풍, 수초, 해양 생물의 향을 추상적으로 풀어낸 제품입니다. 맑고 시원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바다 속 어둠과 미지의 생명력에 가까운 텍스처를 담았다고 합니다. 오르토 파리지는 니치 향수 브랜드 중에서도 아방가르드한 향을 추구하는 브랜드라고 하겠습니다. 

 

 

 

젠틀몬스터를 닮은 아트 코스메틱: 탬버린즈(tamburins)

기존의 뷰티 브랜드와는 다른 DNA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탬버린즈를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이 몇 해전이었습니다. 선물용 핸드크림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주변에서 선물을 주는 일들을 보면서

receipt-lab.co.kr

 

 

 
 

후각은 감정과 기억

니치 향수 향기의 하이엔드 맞춤정장과도 같다고 보면 이해가 쉽겠는데요. 대중적인 향수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이나 취향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가격 역시도 저렴하지 않기도 합니다. 명품 브랜드의 향수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을 하거나, 비슷한 수준인데요. 아무래도 자신만의 향을 찾는 소비자의 심리를 반영한 부분과 니치 향수 브랜드 자체가 대량 생산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 희소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향이라는 부분은 감각적인 부분으로 인해, 이미지와 스토리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만들어간다는 특징도 있겠습니다.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 중 하나가 후각 상실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후각은 뇌의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편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향수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향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자신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향수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행위는 나를 표현하는 감각적 언어를 찾는 과정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후각은
숨쉬는 동안
살아가는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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